등장인물
『현기증』의 중심 인물은 스코티 퍼거슨(John "Scottie" Ferguson)이다. 그는 과거 사건에서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고소공포증을 안고 살아가는 은퇴한 형사다. 그의 내면에는 트라우마와 집착, 정체성의 혼란이 겹쳐 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매들린 엘스터(Madeleine Elster)와 주디 바턴(Judy Barton)이라는 이중 인격적 구조를 통해 등장한다. 매들린은 미스터리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으로, 스코티가 의뢰를 받아 감시하던 중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처음부터 조작된 것이다.
주디는 매들린 역할을 연기한 실제 여성으로, 스코티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린 후 그녀를 다시 매들린처럼 변화시키려 한다. 이 인물은 동시에 피해자이자 공범, 그리고 스코티의 집착에 휘말린 존재다.
이외에도 매들린의 남편 개빈 엘스터(Gavin Elster)는 전형적인 조작자이며, 스코티의 오랜 친구 미지(Midge)는 그를 걱정하는 현실적이고 온화한 인물이다. 인물들은 모두 스코티의 심리적 세계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줄거리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스코티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경찰직을 그만두고 조용히 살아간다. 어느 날, 과거 친구였던 개빈 엘스터로부터 아내 매들린을 감시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녀가 조상인 칼로타의 영혼에 사로잡혀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스코티는 매들린을 관찰하던 중, 그녀의 우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료되고, 점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어느 날 매들린은 교회 종탑에서 투신해 목숨을 잃고, 스코티는 자신의 공포 때문에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 정신적으로 붕괴된 그는 한동안 요양소에 머무른다.
이후 거리에서 우연히 매들린을 닮은 여성 주디를 만나게 된 그는, 그녀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외모와 복장을 매들린처럼 바꾸기 시작한다. 주디는 사실 매들린 역할을 연기한 여성이며, 남편 개빈과 공모해 진짜 아내를 살해하고 사건을 위장했던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던 주디는 스코티에 대한 감정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스코티는 교회에서 진실을 모두 알아차리고 주디를 대면하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종탑에 오른 주디는 또다시 사고로 떨어져 사망한다. 스코티는 끝내 현기증의 공포를 극복했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감을 마주한다.
감상평
『현기증』은 인간의 심리를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 중 하나다. 히치콕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서, 기억과 환상, 집착과 죄책감의 복잡한 감정을 층층이 쌓아올렸다. 특히 스코티가 주디를 매들린으로 변모시키는 장면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와 망상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고소공포증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통제 욕구와 과거에 집착하는 인간의 내면에 있다. 히치콕은 카메라의 움직임, 색감, 음악을 통해 심리적 불안과 현기증의 감각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스코티의 불안정하고 집요한 면모를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킴 노박은 하나의 인물이지만 두 인격을 연기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파열은 단순한 스릴러를 뛰어넘는 비극성을 더한다.
『현기증』은 처음에는 평가가 엇갈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걸작으로 인정받으며 결국 영화사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 같은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고전 영화 중에서도 특히 분석과 재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작품이며,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히치콕이 만든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심리극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