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시계태엽 오렌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문제작이자, 인간 본성, 자유 의지, 국가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담은 영화다. 주인공은 알렉스(Alex DeLarge)로, 젊고 지적이며 동시에 극도로 폭력적인 청년이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드로그스(Droogs)’라는 폭력 집단을 이끌며, 범죄를 일삼고 ‘울트라 폭력(ultraviolence)’이라 불리는 행위를 쾌락으로 여긴다.
알렉스의 부모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존재로 그려지며, 그가 어떻게 사회의 제약과 관심 없이 자라났는지를 암시한다. 그의 친구들, 조지, 딤, 피트는 알렉스를 따르다가 점차 배신과 갈등을 겪으며 흩어진다.
또 다른 주요 인물은 정부 요원, 감옥 교도관, 심리학자 등이다. 이들은 알렉스를 ‘갱생’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인간성을 억제하는 실험을 감행하며, 영화의 핵심 질문—인간은 자유롭게 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전면에 제시한다.
줄거리
영화는 알렉스와 그의 드로그들이 길거리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강간과 절도를 저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사회에 반항하고 권위를 조롱하며, 고전 음악 특히 베토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러나 어느 날 동료들과의 내분 끝에 경찰에 체포되고, 14년형을 선고받는다.
감옥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던 알렉스는 정부가 추진하는 ‘루도비코 요법’이라는 갱생 실험에 자원하게 된다. 이는 폭력적인 영상과 고전 음악을 반복 노출해 신체적으로 구토와 공포를 유발하도록 조건화시키는 방식이다. 치료가 끝난 후 그는 폭력적 충동은커녕, 자신을 방어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가 된다.
출소 후 그는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한다. 과거 그가 공격했던 피해자들과 마주치면서 알렉스는 역으로 피해자가 되며 고통받는다. 심지어 베토벤 음악조차 이제는 고통을 유발하게 되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것마저 잃는다.
절망한 알렉스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이를 계기로 정부는 그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치료’를 시도한다. 영화는 그가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암시와 함께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렉스는 “I was cured, all right”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것은 진짜 치료인지, 다시 괴물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선언이다.
감상평
『시계태엽 오렌지』는 보기 불편하고, 해석하기 어렵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은 폭력을 묘사함에 있어서 미화하거나 비판하는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도덕적 혼란을 겪도록 유도함으로써, 영화의 주제—자유 의지와 인간성의 본질—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한다.
알렉스는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다. 그는 매력적이고, 똑똑하며, 때로 유쾌하기까지 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그를 단순히 미워하지 못하고, 동시에 옹호하지도 못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이는 영화의 가장 위험하면서도 강력한 지점이다.
비주얼과 음악의 사용도 이 작품의 강점이다. 선명한 색채, 극단적으로 연출된 세트, 고전 음악과의 충돌은 영화의 불안한 분위기를 강화하며, 하나의 미학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영화 내내 반복되며, 고전 예술조차 폭력의 일부로 흡수되는 상황을 상징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단지 반사회적 인물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의지를 통제하고 기계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비판이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존재여야 하며, 그 자유 속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권리 또한 포함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 영화는 검열, 표현의 자유, 국가 권력의 윤리에 대한 토론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우리가 불편해하는 진실을 날카롭게 찌르며, 질문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