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레베카』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첫 미국 작품이자, 고딕 미스터리 장르의 대표적인 고전이다. 영화는 “레베카”라는 이름은 계속 언급되지만, 정작 그녀는 이미 사망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감은 극 전체를 지배한다.
이야기의 화자는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는 **젊은 여인(나)**이다. 그녀는 평범하고 수줍은 성격의 하녀 출신으로, 부유한 미망인 맥심 드 윈터(Maxim de Winter)와 사랑에 빠져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그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며, 관객은 그녀의 심리와 불안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맥심 드 윈터는 신비롭고 냉담한 면이 있는 인물로, 아내 레베카의 죽음 이후 감정적으로 폐쇄된 상태다. 그는 새 아내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레베카의 그림자 아래 살아가고 있다.
댄버스 부인(Mrs. Danvers)은 레베카의 가정부였으며, 지금도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갖고 있다. 새 안주인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며 레베카의 흔적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그녀는 고딕적 불안의 핵심 인물로, 영화 전반에 걸쳐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줄거리
이야기는 몬테카를로에서 시작된다. 젊은 하녀는 우연히 만난 영국 귀족 맥심 드 윈터와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해 유명한 저택 ‘맨덜리(Manderley)’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전처 레베카의 존재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점점 위축되고 불안에 빠진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물건과 방을 그대로 보존하며, 새 여주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맥심 역시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며, 그녀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후 레베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드러나고, 사건의 진상이 점차 밝혀진다. 맥심은 사실 레베카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의 악행과 기만에 지쳐 있었다. 어느 날 격한 말다툼 끝에 레베카는 보트 사고로 죽었고, 맥심은 이를 은폐했던 것이다.
법정에서의 조사와 증거들이 맥심을 위기로 몰아넣지만, 결국 레베카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난 순간, 맨덜리 저택에는 불이 붙고,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방에서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젊은 부부가 저택을 뒤로하고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감상평
『레베카』는 고딕 미스터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히치콕은 공포와 서스펜스를 직접적인 폭력이나 유혈이 아닌, 심리적 불안과 분위기로 조성해낸다. 특히 맨덜리 저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처럼 기능하며, 폐쇄된 공간에서의 감정의 억압과 폭발을 상징한다.
‘이름 없는 화자’는 관객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그녀의 불안은 곧 우리의 불안이다. 그녀는 한 여성의 성장 서사이기도 하며, 외부의 평가와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여정이다. 조앤 폰테인의 연기는 이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맥심의 복잡한 내면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구현했고, 주디스 앤더슨이 연기한 댄버스 부인은 지금까지도 영화사 최고의 심리적 악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녀의 눈빛과 말투, 행동 하나하나는 불길하고 강렬하다.
『레베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것은 기억과 비교, 상실과 억압,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체성의 확립에 대한 이야기다. 고딕 장르 특유의 어두운 색채 속에서도, 이 영화는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무엇보다도 히치콕은 이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포’의 대가임을 증명했다. 레베카는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서스펜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