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로마의 휴일』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고전으로,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자유와 책임, 꿈과 현실 사이의 갈림길을 그린 아름다운 이야기다.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앤 공주(Princess Ann)**는 유럽의 가상 왕국에서 온 젊은 공주다. 그녀는 외교 순방 중 로마에 도착하지만, 정해진 일과와 의무에 짓눌려 있다. 겉으로는 품위 있고 얌전하지만, 속으로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며, 단 하루만이라도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어한다. 그녀의 인물상은 억눌린 청춘이 꿈꾸는 탈출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조 브래들리(Joe Bradley)**는 로마 주재 미국 신문사 기자다. 유쾌하고 재치 있는 성격으로, 처음엔 특종을 위해 앤 공주의 정체를 숨기고 접근하지만, 점차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게 된다. 기자로서의 직업적 윤리와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그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또한, 조의 친구이자 사진기자인 **어빙 래드로비치(Irving Radovich)**도 이야기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는 조의 계획에 협력하면서도 인간적인 양심을 갖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줄거리
앤 공주는 로마에 머무는 외교 일정을 수행하던 중, 감정적 부담과 억압된 삶에 지쳐 한밤중에 몰래 왕궁을 빠져나온다. 진정제 약효로 비틀거리던 그녀는 조 브래들리 기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조는 그녀가 공주라는 사실을 모른 채 집으로 데려와 재운다.
다음 날, 신문을 통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조는 앤과 하루를 함께 보내며 특종을 얻을 기회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바로 밝히지 않고, 평범한 시민처럼 로마 시내를 안내하며 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로운 하루를 선사한다.
그들은 함께 거리와 카페를 걷고, 스쿠터를 타고, 입구가 잠긴 성에서 수영도 즐긴다. 이 하루는 앤에게는 꿈꾸던 평범한 삶이고, 조에게는 일생일대의 진심을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앤은 공주의 신분을 숨기고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그녀는 진심 어린 작별을 고하며 왕궁으로 돌아간다. 조도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진심을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는 앤이 참석한 기자회견장에 간다. 둘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앤은 원고에 없는 인사를 하며 조의 배려와 하루의 기억을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이후 조는 기자 회견장을 천천히 걸어 떠나고, 카메라는 그를 멀리서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감상평
『로마의 휴일』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삶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들, 즉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영화다. 그 중심에는 두 사람의 캐릭터와, 로마라는 도시가 있다.
오드리 헵번은 앤 공주 역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과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그녀는 실제로도 당시 신인이었지만,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청순하면서도 주체적인 여성상은 1950년대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이었다.
그레고리 펙은 조 역을 통해 재치 있고 진중한 기자를 표현하며,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더욱 큰 여운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의 무언의 감정 연기는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영화의 배경인 로마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자유와 변화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콜로세움 등을 함께 걷는 그 하루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하루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영화가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길로 돌아가지만, 그 하루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는다. 사랑보다 더 깊은 감정, 즉 존중과 이해가 영화의 중심 정서로 흐른다.
『로마의 휴일』은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된 감성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그 하루의 여행, 스쿠터, 거리의 음악, 어색한 미소, 마지막 작별까지—모든 것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잔잔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