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적인 가족 드라마로, 실패한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한 남자가 짧은 하루 동안 가족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잃어버린 시간과 감정의 회복, 그리고 인생의 속도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시라타리 료타(아베 히로시)**는 한때 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지만, 현재는 사설 탐정으로 일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도 쓰지 못하고, 도박에 빠져,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도 멀어진 인물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엔 가족에 대한 미련과 회복의 갈망이 남아 있다.
**신코(마키 요코)**는 료타의 전 아내로, 아들의 양육을 책임지며 단단하게 살아가는 현실적인 여성이다. 료타에 대해 미련은 없지만, 여전히 그가 좋은 아버지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요시코(기키 키린)**는 료타의 어머니로, 작은 공공임대주택에서 홀로 살아간다. 아들을 이해하면서도 훈계하지 않고, 고요하게 지켜보며 가족이 다시 연결되기를 은근히 바라본다.
줄거리
작가로 한때 성공을 맛봤던 료타는,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붙잡은 채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글은 쓰지 않고, 사설 탐정 일을 하며 버는 돈도 대부분 도박으로 탕진한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 시노부와도 거리를 두고 지낸다.
어머니 요시코는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아들과 손자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어느 날, 태풍이 오기 전날 밤, 료타는 전처 신코와 아들 시노부, 그리고 어머니 집에 우연히 함께 머물게 된다.
오랜만에 모인 이 가족은 태풍이 몰아치는 동안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안에서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조금씩 드러나고, 서로를 향한 묵은 미안함과 사랑이 고요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태풍이 지나간 아침, 특별한 변화는 없다. 그러나 료타는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해 고민하며 새로운 시작을 마음속에 품는다.
감상평
『태풍이 지나가고』는 인생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을 때,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결코 극적인 반전이나 화해가 아니라, 조용한 인정과 수용의 순간에서 비롯된다.
료타는 완벽한 실패자처럼 보인다. 한때는 촉망받던 작가였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속이며 도망쳐 왔다. 이 영화는 그런 인물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늘 그렇듯, 일상의 대화와 침묵 속에 인물의 감정을 녹인다. 그 누구도 크게 울지 않고, 큰 소리로 화해하지 않지만, 태풍이 몰아친 밤에 나눈 대화 하나, 침묵 속에 앉아 먹는 저녁 하나가 관계를 조금씩 회복시킨다.
기키 키린이 연기한 요시코는 이 영화의 중심 축이다. 그녀의 눈빛과 말투, 작은 표정들이 인물들을 잇는 다리가 된다.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체념으로 가족의 진심을 묶는다. 아베 히로시는 료타의 후회와 자책, 그리고 잔잔한 희망을 절제된 연기로 보여준다.
영화는 결국 말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
태풍이 지나간 아침,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간 것처럼 보여도, 인물들의 마음속에는 미세한 균열과 회복이 동시에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